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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본인의 성장과정과 생활신조 등자기소개 (1600바이트)
[아홉시 수업은 아홉시에 강의실로 들어오라는 뜻이 아니다, 기본을 지키는 정직함: 성장과정]
지금까지 배움의 연속이었던 저의 인생에서 중요한 가치는 기본을 지키는 정직함입니다. 그 중심에는 결과도 중요하지만, 그 과정, 즉 수업에의`출석`을 중요시하는 저희 부모님의 가정교육이 있었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저는 대학생활 동안 언제나 수업에 빠지지 않았습니다. 단순하게 수업에 참여만 하는 것을 넘어, 저는 항상 30분 정도 일찍 와서 수업을 준비했습니다. 가끔 수업에 참석하지 않는 친구들을 향하여 저는 말합니다. 아홉시 수업은 아홉시 정각에 강의실에 들어오라는 뜻이 아니고, 그전에 도착하여 수업을 들을 준비를 마치는 뜻이라고 말입니다.
[아름다움의 극치는 정확함에 있다: 나의 생활신조]
저는 공부나 일을 하는 데 있어 무엇이든지 정확성을 추구합니다. 무엇이든 확실히 알고자 노력하고, 그것을 표현하는 데 있어서 실수하지 않도록 끊임없이 노력합니다. 특히 저는 평소 문서의 오·탈자에 민감한 편인데, 2013년 겨울에 영어교재 편집 아르바이트를 하며 정확성의 중요함을 더 크게 깨달았습니다. 이러한 저의 생활신조는 거래를 위한 문서작성 시 토씨 하나도 정확하게 작성해야 하는 대우인터내셔널의 업무에 꼭 필요한 자질이라고 생각합니다.
#2. 본인을 대표할 수 있는 이력 3가지를기술하여주시기바랍니다. (출생, 단순 학력사항, 당사 입사지원 제외) (2400바이트)
[주한미군이 가장 먼저 만나는 한국인: 카투사 복무]
2011년, 저는 카투사에 선발되어 서울 용산 미군부대에서 군 복무를 하였습니다. 제가 있던 곳은 신병 보충대로, 한국으로 처음 들어오는 모든 주한미군이 새로운 부대로 배치되기 전 전입신고를 해야 하는 곳이었습니다. 저는 이곳에서 전입신고 서류 처리를 위한 3일간의 교육을 진행하는 업무를 담당했었습니다. 저는 그들이 처음 마주하는'한국인'이었기 때문에, 나라를 대표한다는 자긍심을 가지고 누구보다도 열심히 근무하였습니다.
[미국 내 해외취업을 위한 플랫폼을 만들다: K-MOVE 실리콘밸리 웹사이트 개설]
올해 상반기 저는 미국 캘리포니아주 산호세에 있는 KOTRA 실리콘밸리 무역관에서 6개월 동안 대학생 인턴을 하였습니다. 제가 주로 맡았던 업무는 고용노동부 산하의 K-MOVE 사업으로, 미국 내 한인 청년들의 취업을 도와주는 일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해외취업을 원하는 구직자와 그러한 청년들을 고용하고자 하는 구인처가 잘 연결되어 있지 않아 업무 진행이 쉽지 않은 상황이었습니다. 이에 무역관에서는 해외취업을 위한 연결 다리를 놓고 자 K-MOVE 실리콘밸리라는 웹사이트를 8월 초에 오픈하였습니다(http://www.kmovesv.org).저는 이 프로젝트에서 웹사이트 제작 엔지니어들과의 수 없는 회의를 통하여 지속해서 웹사이트의 오류를 잡으며 웹사이트 운영에 문제가 없도록 하였습니다.
[해외시장정보 생산: KOTRA 글로벌 윈도 작성]
KOTRA에는 해외시장조사를 통하여 보고서를 작성하는 글로벌윈도라는 웹사이트가 있는데, 저는 인턴을 하며 실리콘밸리 지역 산업 동향에 관한 보고서들을 이곳에 작성하였습니다. 특히 마지막에 작성하였던 반도체와 관련한 글은 현재까지 1,000건이 넘는 조회 수를 기록하였습니다. 제가 기고하였던 3건의 글로벌 윈도 글들은 아래와 같습니다.
"美, 충전시설 확충에 달린 전기차의 상용화"
"아마존 프라임 에어, 그 유통 패러다임의 혁신"
"반도체 미세공정 주도권 전쟁:EUV와 QPT"
#3. 지금까지 본인의 경험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성공 사례와 실패 사례는 각각 무엇입니까? (각 1가지씩 선정) (2400바이트)
[장롱면허 의미 서부 횡단기: 성공사례]
올해 상반기 KOTRA 인턴을 위해 미국으로 출국하기 전까지만 해도 저는'장롱면허'소유자였습니다. 대도시가 아닌 경우 대중교통은 시설이 빈약했기 때문에, 주말에 여행차 돌아다니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를 핑계로 집에만 있기에는, 다시 찾아오지 않을 젊음이 아까웠습니다. 그래서 운전에 도전하여 주변의 다양한 관광지들을 다녀보자는 목표를 세웠습니다. 회사 직원들의 도움을 받아 끊임없이 노력한 끝에, 저는 6개월간 1,000km를 넘게 운전하며 샌프란시스코, LA와 같은 대도시뿐 아니라, 요세미티 국립공원 등 대자연까지, 여러 곳을 여행하며 값진 경험을 쌓았습니다. 운전에 대한 두려움을 떨쳐내고 이뤄낸 도전의 성과였기에 개인적으로 기억에 아주 많이 남는 경험이었습니다.
[자만하다가 낸 접촉사고: 실패 사례]
제게 가장 기억에 남는 실패도 역시 운전을 하면서 생긴 일입니다. 운전에 적응하기 시작하면서, 저는'이제 나도 운전을 잘한다'라고 자만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던 중, 하루는 빌린 차의 반납 시간을 얼마 남기지 않고 돌아가기 시작했습니다. 약속한 시각에 맞추어 반납해야 하는데, 고 속도로는 꽉 막혀있는 것을 보면서 저는 마음이 급해졌습니다. 빨리 가려는 마음만 앞서다 보니, 결국 저는 앞차와의 가벼운 접촉사고를 내었습니다. 다행히 다친 사람은 없었지만, 앞차의 상태를 확인하는 것이 중요했기 때문에, 바로 그들을 만나 진심 어린 사과를 하였습니다. 그리고 이후 보험처리에 대하여 신속히 논의하였습니다. 이에 상대방은 오히려 진심 어린 자세로 사과해서 고맙다는 말을 해주었고, 이후 상황은 잘 처리되었습니다. 이를 통하여, 저는 어떤 일이든 조금 적응했다 생각하여 자만하지 않기로 다짐하였습니다. 비록 제 인생의 가장 큰 실패였지만, 스스로에 대한 반성을 통하여 저는 한 단계 더 성숙하였습니다. 끊임없는 배움을 통한 자기발전은 당사의 해외영업 업무에도 큰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4. 당사 지원동기와 본인의 지원 직무 수행을 위해 준비해 온 사항에 대해 기술하여주시기 바랍니다. (3000바이트)
[새롭게 뿌리내린 지 이제 5년, 대우인터내셔널이라는 대나무를 세상에서 가장 큰 나무로 만들고 싶습니다]
대나무가 싹을 틔우기 위하여 땅속으로 뿌리를 뻗는 데에는 5년이라는 긴 시간이 걸린다고 합니다. 그러나 한번 땅 위에 싹을 틔우고 나면, 그 이후로는 하루에 70cm씩 자란다고 합니다. 국내 최고의 종합상사인 대우인터내셔널이 2010년 포스코라는 새로운 땅에 뿌리를 뻗기 시작한 지 5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저는 대우인터내셔널을 지금부터 하루에 70cm씩 성장하는 대나무로 만드는 데에 이바지하고자 합니다. 해외영업부서의 핵심 업무인 트레이딩과 프로젝트 오거나 이질 모두를 배우며 대한민국 최고의 상사인이 되고자 하는 제 꿈을 이루고 싶습니다. 이에, 큰 포부를 가지고 대우인터내셔널에 지원하게 되었습니다.
[꿈을 위한 도전의 연속이었던 나의 20대의 엔진, 무역업: 직무수행을 위한 나의 준비]
당사에 지원하기 위하여 제가 한 첫 번째 준비는 영어회화 실력 향상입니다. 저는 2011년 카투사에서의 군 복무를 통하여 더 넓은 세계로 나가 국제적인 감각을 키우고 싶다는 꿈을 꾸었습니다. 그러나 이를 위해서는 뛰어난 영어 구사능력이 필수적이었습니다. 그리하여, 저는 복무하는 동안 창피함을 당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모르는 표현이 있으면 동료들에게 끊임없이 묻고 배워나갔습니다. 그 결과 1년 후, 저는 다양한 주제에 대하여 미군 동료들과 자유롭게 토론할 수 있을 정도가 되었습니다. 또한, 학교로 돌아온 이후에는 영어 커뮤니케이션학을 부전공하며, 영어의 감을 잊지 않으려 노력했습니다.
2012년 군 복무를 마친 후 홀로 떠난 미국 여행을 통해서 저는 구체적으로'무역업'에 종사하고 싶다는 꿈을 확립하였습니다. 당시 미국에서 KOTRA 현지 직원으로 일하고 있던 사촌 형을 통하여 국내 중소기업들을 지원하기 위하여 다양한 사업을 펼치는 KOTRA를 살펴보며, 저는 국제무대에서 나라 발전에 보탬이 되는 무역업에 매료되었습니다.
2013년 갓 학교로 복학하여 관련 경험을 쌓고자 인턴십을 찾아보기 시작했고, 마침 KOTRA가 해외무역관 인턴을 모집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당시에는 학업성적이 좋지 않았던 저는 지원자격 미달이었습니다. 그러나 제 꿈을 포기할 수 없기에 약 1년 반 동안이 악물고 공부를 하였고, 마침내 저는 KOTRA 실리콘밸리 무역관에서 6개월간 인턴을 마치고 돌아왔습니다. 무역업에의 꿈을 위하여 쉼 없이 달려온 저의 20대는 대우인터내셔널에서 그 새로운 무대를 맞이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