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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자신에게 주어졌던 일 중 가장 어려웠던 경험, 혹은 자신에게 요구된 것보다 더 높은 목표를 스스로 세워 시도한 경험은 무엇입니까? 그 일을 하게 된 이유와 그때 느꼈던 감정, 진행하면서 가장 어려웠던 점과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 했던 행동과 생각, 결과에 대해 최대한 구체적으로 작성해 주십시오. (1000 자 10 단락 이내)
20도를 극복하는 것이 가장 힘들었습니다.
중학교 3학년 겨울방학 스노우보드를 타러 갔다 사고를 피하기 위해 방향을 틀다 미끄러져 왼쪽팔이 돌아가는 부상을 당했습니다. 연골과 팔근육에 심각한 손상을 입었습니다. 팔은 회복 되겠지만 전처럼 움직일 수는 없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1달동안 고정 깁스를 했고 관절이 굳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보조기를 이용해 팔을 움직여야 했습니다. 아직뼈와 연골의 연결이 견고하지 않아 넓은 각도로 팔을 움직이면 뼈가 다시 빠질 수 있다고 주의를 주셨습니다. 치료후 움직일 수 있는 팔의 최대 예상 각도는 160도였습니다. 팔이 남들과 달라진 다는 것은 어린 저에게는 큰 충격이었지만 팔의 완치가 불가능 하다는 사실 보다 늦은 밤에 놀러 갔던 아들을 병원으로 보러 오신 걱정가득한 부모님들을 뵈니 죄를 졌다는 생각만 들었습니다. 어렸던 제가 생각 할 수 있던 부모님 걱정을 덜어드리는 방법은 재활 운동을 열심히 해서 180도까지 피는 것 이었습니다. 보조기를 사용한 후부터 고통을 무시하고 모든 일을 왼손으로 시도했습니다. 초기에는 보조기가 있어도 오른손으로 왼팔을 받치지 않으면 팔을 90도로 펴는 것 조차 눈물 나는 고통이었습니다. 재활운동은 매우 고통스러웠지만 저를 바라보시는 부모님의 걱정스런 눈길을 보며 마음을 다잡고 권장하는 운동량과 각도를 초과하여 재활 운동을 했습니다. 4개월 후 한계라고 들은160도에 도달했지만 그 이상으로는 거의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180도를 꼭 만들어야 했기 때문에 벽에 팔을 걸고 힘주어 펴기, 엎드려누운 뒤 팔꿈치에 책을 올려놓고 반대 손으로 누르기 등 강제로 힘을 줘 팔을 피려고 했습니다. 추가로 근육을 키우기 위해 젓가락질, 글자 쓰기, 운동 등 모든일을 왼손으로 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20도가 저에게는 저를 위한 노력인 동시에 부모님을 위한 노력이었고가장 끈기 있게 노력했던 사례입니다.
그 결과 현재는 턱걸이, 팔 굽혀 펴기 등 격한 운동에도 아무런 지장없는 왼팔이 됐습니다
2. 이제까지 가장 강하게 소속감을 느꼈던 조직은 무엇이었으며, 그 조직의 발전을 위해 헌신적으로 노력했던 것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경험은 무엇입니까? 개인적으로 더 많은 노력을 기울였던 일과 그 때 했던 행동과 생각, 결과에 대해 최대한 구체적으로 작성해 주십시오. (1000 자 10 단락 이내)
소속감은 스스로 만드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가장 강하게 소속감을 느끼는 곳은 현재 속해있는 운동클럽입니다. 냉정하게 다른 클럽과 비교해봤을 때 월등히 좋은 것은 없지만 운동클럽은 저에게 휴식처입니다. 평소 운동을 좋아했기에 운동 동호회도 몇 개 가입했었습니다. 어느 집단이건 좋은 사람도 있고 나쁜 사람도 있다는 것은 경험을 통해 알고 있었지만 항상 즐겁기만을 원했던 저는 사람에 실망하여 과거 동호회를 떠났었습니다.
운동클럽 또한 다른 집단과 다르지 않습니다. 하지만 전과는 다르게 강한 소속감을 느낍니다. 타 클럽과 명확히 구분되는 장점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운동클럽에 소속감을 느끼는 가장 큰 이유는 제가 원해서 들어간 곳이며 현재 제가 속해있는 집단이기 때문이고 어느 순간 스스로 집단의 일원이라고 생각하게 됐기 때문입니다.
클럽은 위한 노력으로 첫째로는 체육관에 들어가며 큰소리로 인사하기를 합니다. 인사하는 것은 기본이지만 실제로 들어오며 항상 인사하는 사람은 드뭅니다. 먼저 인사하는 것은 어렵지 않지만 쉽지도않습니다. 저에게 쉽지 않다면 다른 사람도 동일하다는 것은 당연하기 때문에 조금의 노력을 들여 먼저인사하는 것으로 운동을 시작했습니다. 제가 먼저 크게 인사를 하면 처음오시는 분들은 인사가 당연한 것이라생각하며 따라 할 것이고 여럿이 하다 보면 쑥스러워 하던 사람들도 인사를 당연시 여기게 될 겁니다.
또한 클럽행사에 빠지지 않고 참석했습니다. 단순한 클럽 동호인이 아닌한 단체의 가족으로 느꼈으면 했기에 호칭도 삼촌, 이모로 칭했고 모든 행사에 참가 했습니다. 월례회의, 대회, 회식등 서로 가까워 질 수 있는 활동에 항상 참석하여 허드렛일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거대한 헌신을 한 적은 없지만 집단과 같이 움직이려 했고 잡일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SK E&S 또한 사람 사는 집단이기 때문에 인사와 작은 일도 마다하지 않고 행하다 보면 SK가 어느 샌가 저의 또 다른 안식처가 되어 있을 거라 믿습니다..
3. 기존과는 다른 방식을 시도하여 이전에 비해 조금이라도 개선했던 경험 중, 가장 효과적이었던 것은 무엇입니까? 그 방식을 시도했던 이유, 기존 방식과의 차이점, 진행 과정에서 했던 행동과 생각, 결과에 대해 최대한 구체적으로 작성해 주십시오. (1000 자 10 단락 이내)
2013년 가을부터 2014년봄까지 “배움을 나누는 사람들”이라는 단체에서 형편이 좋지않은 중학생들에게 수학을 가르쳤습니다.
한 여학생이 있었습니다. 언제나 거친 말을 사용하고 행동했기에 그학생을 문제아라 생각하고 엄하게 대했습니다. 봉사기간 중 체육의 날에 그 학생과 같은 팀이 되었고 수업시간에는알려고 하지 않았던 학생의 꿈을 알게 됐습니다.
가장 좋아하는 것은 만화 그리는 것이며 가장 좋아하는 만화는 원피스라는 일본 만화였고 만화가가 꿈이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부모님의 반대로 집에서는 만화를 그릴 수 없었고 언제나 학교나 주말에 밖에 나와 그림을 그렸는데 “배움을 나누는 사람들”을 하면서 주말에 교육장에 나와 공부를 해야하기 때문에 그림을 그릴 수 없어서 공부하기가 싫다고 했습니다. 만화책을 소장할 정도로 만화책을 좋아하는저는 학생과 만화책 얘기를 하며 가까워졌습니다. 몇 번의 얘기 후 어린 나이에 확고한 꿈이 있다는 것이부러우면서 부모의 반대가 있다는 것에 안타까웠기에 도와주기로 결심 했습니다. 학부모님께 상담신청을 하여학생의 뜻이 확고하고 가능성 또한 있기 때문에 도전시켜보는 것이 어떠냐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학부모께서는긴 고민 끝에 한국애니메이션 고등학교에 가면 허락해 주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한국애니메이션 고등학교에입학하기 위해서는 공부성적도 일정 수준 이상이어야 했습니다. 목표가 생긴 학생은 허락 이후에 모습이 180도 달라지진 않았지만 서서히 변화하는 모습을 보면서 다른 학생들에게도 “공부해!” 라는 막연한 강요 대신 의욕을 불러 일으킬 만한 동기를 찾아주기로 했습니다.저 스스로가 언제나 좋아하는 것에 열정적으로 살았는데 어느 순간 학생들에게는 공부만을 강요하고 있는 제 자신을 봤습니다.
“내생각을 강요하지 마”, “사람을 함부로 판단하지마” 같이누구나 당연히 알고 있는 것을 정말 당연하게 하고 싶습니다. SK에서 당연한 생각을 갖고 마땅히 해야할 일을 찾아 당연하게 일하겠습니다.
4. 지원한 분야에서 본인이 하고자 하는 구체적인 직무는 무엇입니까? 해당 직무와 관련된 본인의 역량을 구체적으로 작성해 주십시오. (전공 or 전공 이외의 학습 내용, 직무 경험, 관련 경력 등) (1000 자 10 단락 이내)
자원경영 의사 결정자가 최종 목표입니다. Upstream 과 Downstream을 구분하지 않고 오가며 자원경영을 하고 싶습니다. 데이터를이용한 자원 시장 정세를 예측하여 가스정의 생산량을 조절하며 새로운 가스전 탐사, 천연가스 분배 및판매 등 모든 단계에서 의견을 제시하고 결정을 내리는 자원경영자가 목표입니다.
저의 주 전공은 자원공학입니다. 석유지질학, 석유가스공학에서는 유체의 유동에 관해 이해하고 지하자원의 전반적인 기초를 배웠습니다. 또한 여러 성질을 이용한 다양한 탐사방법이 있고 상황을 고려하여 탐사 방법을 결정하는 방법을 배웠습니다. 탐사 데이터를 해석함에 있어서 고려할 사항들을 익혔고 실무에서 탐사가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경험하기 위해 한국지질자원연구원지열연구실 인턴을 했습니다. 시추공학에서는 리그의 구성과 리그를 운영하는 방법을 배웠고 유전평가공학에서는코어 분석, 로깅 등 가스정을 평가하고 어느 위치에 가스정을 뚫으면 좋을지, 추가정은 어디로 뚫을 지 등 생산과 평가에 대해 배웠습니다. 추가로 특정 주제에 흥미가 생겨 학우들과 같이 논문을 찾고 시뮬레이션을 해보았으며 결과를 소규모 대회에 제출하여 상을 수상했습니다. 자원경제원론과 자원시장분석론을 통해 자원 탐사에서 시작하여시장에 내놓는 유통까지 기술이 아닌 거래를 통해 바라본 자원에 대해 배웠습니다.
자원은탐사에서 시장에 내놓을 때 까지 수년의 시간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천연가스 가격은 하루하루 변동하는변수이기 때문에 의사결정을 내릴 때는 미래의 상황을 예측해야 합니다. 또한 자원의 가격은 기술적인 문제만이아닌 국제정세에도 영향을 받는 변수기 때문에 국제적인 시각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고 경영학을 공부했습니다.
현재까지 배운 지식과 SK입사 후 배우게 될 실무 지식과 경험 그리고업무를 하며 대학원을 다닐 것이기 때문에 추가로 배우게 될 심화된 정보들을 토대로 회사, 더 나아가국가 자원안보에 이바지하겠습니다.
5. 지원한 분야, 직무와 직접적인 연관성은 없으나 입사 후 회사생활을 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는 자신이 가진 지식이나 경험은 무엇입니까? 해당 지식과 경험을 얻기까지 본인의 노력/ 과정 등과 함께 구체적으로 작성해 주십시오. (1000 자 10 단락 이내)
자존심 아닌 자만심 버리기와 인사.
운동을 좋아하여 학창시절부터 여러 운동을 즐겼습니다. 좋아하는 운동을하려고 모인 사람들이지만 언제나 즐거울 수 없듯이 몇 차례 불화도 겪고 알력다툼도 있었습니다. 그 때마다 느낀 것이 운동하는 사람들은 자존심이 강하다는 것 입니다. 운동을 좋아하는 분들 중에는 활동적인사람들이 많았는데 활동적인 사람들은 대부분 자기애가 강했습니다. 운동이란 것이 가끔 상성처럼 유독 누군가에게강하거나 약한 경우가 존재하는데 이때 자신이 상대방보다 잘한다고 생각하는데 경기에서는 지거나 주변 평가가 자신과 다르면 감정이 격해지는 경우가종종 있었습니다. 또한 시합에서 응원이 과한 경우에도 상대방의 감정을 건드리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저의 운동 스타일은 거칠기도 했고 제 자존심이 낮지 않아 시합을 하게 되면 종종 상대방과 얼굴을 붉히곤 했습니다. 때문에 누구와도 원만하게 지내는 사람이 부러웠습니다. 누구와도 원만하게지내는 사람들을 관찰한 결과 그들은 자존심이 아닌 쓸데없는 자만심을 갖지 않았고 말을 아끼는 성향이었습니다. 모두와원만한 관계가 되고 싶어 그들을 따라 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자존심을 버리는 것이 어려웠습니다. 남들보다 잘하고 싶고 잘하면 인정받고싶었습니다. 그건 지금도 마찬가집니다. 하지만 과거와 달라진것은 “이건 내가 너보다 잘해” 라고 생각이 들더라도 굳이그것을 언급하지 않게 된 점입니다. 말 한마디만 줄이면 남들과 얼굴 붉힐 일이 없게 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또한 겪어보지 않으면 모른다는 말은 사실이었습니다. 부정적으로 바라봤던사람도 알고 보면 좋은 사람인 경우가 많았습니다. 이때 부정적으로 바라봤던 사람과 소통하게 만들어 준것은 인사였습니다. 인사만으로도관계가 시작되고 관계가 시작된 후에는 자만심을 드러내지 않는다면 누구와도 원만환 관계가 될 수 있다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먼저인사하기”와 “자만심 내세우지 않기” 라는 대인관계 방법을 몸에 익혔기에 SK E&S 내에서 대인관계, 자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