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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자신에게 주어졌던 일 중 가장 어려웠던 경험, 혹은 자신에게 요구된 것보다 더 높은 목표를 스스로 세워 시도한 경험은 무엇입니까? 그 일을 하게 된 이유와 그때 느꼈던 감정, 진행하면서 가장 어려웠던 점과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 했던 행동과 생각, 결과에 대해 최대한 구체적으로 작성해 주십시오. (1000 자 10 단락 이내)
[황무지를 농장으로]
할머니께서는 목장을 하셨습니다만 그 분께서 연로해 지시고 각자 교수나 회사원등이 되신 아버지 형제들은 운영을 이어받지 못 하였기 때문에 다른 임차인에게 운영을 맡겼었습니다. 그리고 몇 년전에 임차인 아저씨께서 암으로 돌아가시면서 마침내 그 곳은 빈 땅이 되버렸습니다.
그 때 제가 군을 전역하고 아버지도 정년이 가까운 시기였기에 저희는 과수원과 농장을 만들 계획을 세웠습니다.
몇 년동안 제대로 관리되지 못한 땅은 황무지가 되어있었습니다. 처음에는 뜨거운 햇살 아래서 땀을 비오듯 흘리며 육체노동도 힘들었고 주말마다 농장에 가야하는 것에 실증이 나서 차라리 삼촌처럼 물려받은 부분을 팔아버렸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잠시 들었습니다만 할머니께서 그 땅을 마련하기 위해 젊은 시절동안 얼마나 고생하셨는가를 알았기 때문에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농사 초보였던 저희는 인터넷과 도서관에서 정보를 찾아가며 공부하였습니다. 원래 주택이 있던 부분은 삼촌이 매각해 버렸기 때문에 새로 창고를 마련하고 주도로를 따라 심어져 있던 측백나무들을 가지치기하고 잡초들은 예초기로 다 베어 낸 다음 녹차, 탱자, 모과, 매실묘목을 심었습니다. 아버지가 농협에 가입하셔서 나온 비료를 뿌리고 풀과의 전쟁을 위해 농사용 부직포를 덮었습니다. 마을사람들이 바가지를 씌우거나 근처의 업자가 우리 땅에 멋대로 양봉틀을 설치하거나 도둑이 들어 묘목및 예초기, 전기톱등을 훔쳐가는 등 여러 시련이 있었지만 굴하지 않았습니다.
아직 농장의 변화가 끝난 건 않았지만 처음의 황무지에 비하면 엄청난 발전이 있었습니다. 언덕위에서 내려다보면 저 아래로 줄지어 서 있는 작은 나무들이 벌써 제법 그럴싸합니다. 6월에는 오디도 많이 주을 수 있고 채소밭도 있습니다. 원래의 모습을 보았던 친척들은 이 광경에 굉장히 놀랐습니다. 이 모든 변화가 한 순간에 일어난 것은 아닙니다. 저와 가족들이 2013년부터 지금까지 몇년에 걸쳐 노력하고 극복해서 이뤄낸 성과란 것이 굉장히 자랑스럽고 뿌듯합니다.
2. 이제까지 가장 강하게 소속감을 느꼈던 조직은 무엇이었으며, 그 조직의 발전을 위해 헌신적으로 노력했던 것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경험은 무엇입니까? 개인적으로 더 많은 노력을 기울였던 일과 그 때 했던 행동과 생각, 결과에 대해 최대한 구체적으로 작성해 주십시오. (1000 자 10 단락 이내)
이 항목은 개인정보에 관련된 에피소드가 있어 생략함
3. 기존과는 다른 방식을 시도하여 이전에 비해 조금이라도 개선했던 경험 중, 가장 효과적이었던 것은 무엇입니까? 그 방식을 시도했던 이유, 기존 방식과의 차이점, 진행 과정에서 했던 행동과 생각, 결과에 대해 최대한 구체적으로 작성해 주십시오. (1000 자 10 단락 이내)
[정보병의 경험을 활용하다.]
작년 연말에 학교 홈페이지에서 학내 구성원들을 대상으로 성균관대 정보보안 아이디어 공모를 한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기숙사나 자취, 하숙을 하는 학생들은 대부분 프린트기가 없으므로 학교 도서관 1층의 컴퓨터넷에서 출력을 하였는데 200여대의 컴퓨터가 단 3대의 프린터에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그로 인해 이용자들이 많아 혼잡한 때에는 인쇄를 눌러두고 프린터기로 가 보면 앞뒤로 나온 다름 사람의 출력물들과 마구 섞여서 문서를 분실하는 일이 있어 불편하였습니다. 수업용의 PDF파일이나 실험보고서등이 사라진다면 몇 백원 더 내고 다시 뽑으면 그만이었지만 취업이나 졸업인증등의 목적으로 출력한 개인적인 목적의 서류들을 남이 가져가 버린다면 개인정보침해가 생길 수도 있다는 것에 주목하였습니다.
저는 현역병 시절에 대대정보병으로 복무하며 대대의 보안을 관리했었기에 그 때의 경험을 활용하여 아이디어를 출품해 보기로 하였습니다. 군대에서 사용하는 컴퓨터는 자료유출을 방지하고자 `파수꾼`이라는 프로그램을 강제로 설치하여 모든 출력물들은 책임자의 관등성명이 워터마크로 달리게 되어있었는데 이 점에서 아이디어를 얻었습니다. 도서관 컴퓨터나 프린터기를 사용하기 위해서는 로그인해야 하는데 이 아이디를 워터마크로 달면 타인과 출력물이 섞일 일이 줄어들 거라고 생각하였기 때문입니다.
또한 상급부대의 작전과나 정보과에서 비문을 생산할 때에는 인트라넷 연결등이 다 끊은 채 네트워크가 아닌 직접 연결 된 프린터를 사용하여 출력하여야 하였는데 이 처럼 중요한 문서들을 출력하기 위한 별도의 독립된 프린터와 컴퓨터가 설치된다면 개임정보 유출의 위험이 줄어들 것이라는 제안도 제출하였습니다.
그 후 제가 제출한 제안들은 비록 별도의 총장표창의 수여되는 특별상을 받지는 못하였지만 2급상과 3급상 등을 수상하여 총5만원의 문화상품권을 지급받을 수 있었습니다. 비록 제 제안이 실현되지는 않았지만 보안을 담당했던 경험을 살린 제안을 제출할 수 있어 만족하였습니다.
4. 지원한 분야에서 본인이 하고자 하는 구체적인 직무는 무엇입니까? 해당 직무와 관련된 본인의 역량을 구체적으로 작성해 주십시오. (전공 or 전공 이외의 학습 내용, 직무 경험, 관련 경력 등) (1000 자 10 단락 이내)
[나의 역량과 직무]
제가 이번에 지원한 SK E&S 전력사업에는 여러 가지 직무가 있지만 제가 가장 관심 있는 것은 전력사업운영 직무입니다.
저는 성균관대학교에서 전자전기 공학을 전공하면서 ‘전자기학’과 ‘회로이론’등의 기본적인 과목은 물론 ‘전력시스템공학’, ‘배전 자동화 설계’등 대전력쪽의 전공과목과 ‘제어공학기초’, ‘제어설계기법’등의 제어 분야까지 수강하여 지식을 습득하였습니다. 또한 ‘전기기기’ 및 ‘전동기 제어 실험’을 수강하며 발전의 근간이 되는 전동기 및 발전기의 구조 및 원리에 관해서도 공부하였습니다.
제가 특히 선호하는 직무는 발전소의 운전관리나 정비관리 분야입니다. 왜냐하면 제가 흥미롭게 배운 ‘전기기기’에서도 전력을 역학적 힘과 연결해 주는 발전기 및 전동기 분야가 특히 재미있었고 전력과 배전부문에서 배운 대전력의 변압, 송 배전분야도 저에게 맞겠다고 느꼈기에 저의 분야는 이 쪽이라고 마음먹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또한 지금 진행 중인 졸업 작품 뿐만 아니라 종합설계프로젝트도 제어분야를 선택하여 팀원들과 함께 진행 중에 있는데 이 경험이 도움이 될 거라 생각했습니다. 더불어서 제가 취득한 전기산업기사 자격증도 이 분야의 직무를 수행하는데 약간의 도움이 될 거라 생각합니다.
그 외에도 토익 920점과 토익 스피킹 Lv.6를 취득하였고 저의 영어 실력은 그것을 사용하는 외국인과의 의사소통에 문제가 없을 정도라고 생각합니다. 글로벌 시대에서 타국의 엔지니어들과 협업이 있을 때도 무리 없이 업무수행이 가능할 것입니다.
제가 SK E&S 전력사업 부문에서 일하게 된다면 이런 저의 전공지식을 활용하여 전력 공급이 원활히 이루어질 수 있도록 정상적인 발전소 운전에 기여하겠습니다.
5. 지원한 분야, 직무와 직접적인 연관성은 없으나 입사 후 회사생활을 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는 자신이 가진 지식이나 경험은 무엇입니까? 해당 지식과 경험을 얻기까지 본인의 노력/ 과정 등과 함께 구체적으로 작성해 주십시오. (1000 자 10 단락 이내)
[돕고 감사하며 살다.]
저의 학창 시절 에피소드 중에서 기억에 남는 한 가지는 중학교 졸업식 날 친구 어머니께서 고마웠다고 꽃다발을 주셨던 일입니다.
제가 다녔던 신도 중학교에는 학습도움반이 있었고 그 곳에 소속된 여러 장애학우들은 오전에는 교실에서 수업을 같이 듣고 오후에는 학습도움반에서 수업을 들었습니다. 1학년 떄 그 중 한 아이와 같은 반이 된 것을 계기로 함께 이야기도 하고 매점도 가며 가까워졌습니다. 그 아이가 집에 가서 부모님께 학교생활을 종종 말하였기도 하고 졸업 시 만들어진 교지에 제가 그 아이의 급식배식을 도와줬다는 것이 실렸던 덕에 그것을 읽으셨던 그 아이의 부모님들께서는 졸업식 날 저에게 그동안 고마웠다고 하시면서 준비해 오신 선물과 꽃다발을 건네주셨습니다.
물론 저는 처음부터 보상을 바라고 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저 같은 반 친구중 하나로서 함께 해 준 것뿐이었지만 그 간단한 일로도 누군가에게 감사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또한 졸업을 축하해 주러 오셨던 저의 할머니 및 부모님들 앞에서 이런 말을 들으니 굉장히 뿌듯하였습니다.
그 이후로 저는 타인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되도록 노력하며 살아왔습니다. 설령 떨어뜨린 물건을 주워 주는 정도의 작은 일이더라도 굉장히 뿌듯하였습니다.
또한 저의 또 하나의 목표는 그 친구의 부모님들처럼 별 것 아닌 일이더라도 감사함을 표현하는 사람이 되자는 것입니다. 졸업식 날의 경험으로 많은 것을 느꼈던 것이 제 삶에 큰 변화를 가져다주었기 때문입니다. 말 한마디로 천 냥 빚을 갚는다는 속담처럼 단순히 몇 마디 아닌 말 뿐이더라도 상대방에게 큰 보람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돕고 감사하며 살자.`이것이 제가 원하는 삶의 자세입니다. 사회로 나가 직장에 소속된다면 조직 내외의 많은 사람들과 업무적으로든 인간적으로든 관계가 생길 것입니다. 그 곳에서도 제가 느낀 바를 실천하여 조직원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회사의 발전을 위해 함께 업무에 노력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