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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취업을 선택한 이유와 입사 후 회사에서 이루고 싶은 꿈을 기술하십시오.
(700자 이내)
사람들이 삼성에 취업하고자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을 것입니다. 높은 보수, 대한민국 최고 그룹이라는 상징성, 안정된 복지와 혜택 등 많은 이유로 사람들은 삼성을 선택합니다. 저 역시도 위와 같은 이유들이 삼성을 선택하는 데에 있어서 강하게 작용했음을 부인하지 않겠습니다. 그 점들이 실제로 삼성에 더 좋은 인재들이 모이도록 하는 삼성의 강점임이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전공이 건축 분야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굳이 많은 계열사 중에서도 삼성물산을, 건설업을 선택한 이유는 따로 있습니다.
사람들은 흔히들 우리나라 건설 시장이 이제는 사양길에 접어들었다고 말합니다. 실제로 점점 노른자위 땅은 건물들로 가득차고 있고, 더 이상 건물을 세울 만한 매력적인 곳이 많이 남아있지 않은 것도 역시 사실입니다. 그 시대의 가장 매력적인 직업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영화나 드라마 남자 주인공의 직업 역시 건축가나 설계사에서 의사, 변호사 등으로 바뀐 지 오래입니다. 건설업이 다시 살아나려면 통일이 되는 수밖에 없다는 말도 나옵니다.
저는 이러한 상황이 오히려 삼성물산에게는 기회라고 생각했습니다. 모두들 버티기 힘들어한다는 것은 잘만 하면 오히려 1등을 굳혀서 시장을 장악하기에 좋은 시기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에 저는 삼성물산에서 회사가 최고의 자리를 공고히 하는 것을 제 손으로 돕고 옆에서 지켜보고 싶습니다.
본인의 성장과정을 간략히 기술하되 현재의 자신에게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사건, 인물 등을 포함하여
기술하시기 바랍니다. (※작품속 가상인물도 가능)
(1500자 이내)
저의 어린 시절을 떠올리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것은 형의 우는 얼굴입니다. 할아버지 할머니를 모시고 사는 대가족에서 태어난 저는 어려서부터 부모님이 맞벌이를 하셨기에 형의 보살핌 아래에서 자랐습니다. 저와 불과 두 살 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 형은 그 적은 나이차에도 불구하고 저를 항상 깨지기 쉬운 도자기 대하듯이 애지중지 했습니다. 제가 잠시만 사라져도 형은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고 행여나 제가 다치기라도 하는 날엔 저보다 오히려 형이 더 세상이 떠나갈 듯이 울곤 했습니다. 부모님도 일을 하지 않는 저녁이나 주말에는 최대한 저희와 놀아주시려고 노력하셨고, 할아버지 할머니께서도 편찮으신 몸으로도 저희를 항상 예뻐하셨습니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의 사랑과 걱정, 그리고 기대 속에 저는 유년 시절을 보냈습니다.
제 부모님은 선생님이십니다. 현재는 교장선생님과 교감선생님으로 재직 중이십니다. 이렇듯 두 분 모두 교육자셨기에 부모님은 저희를 올바르게 교육시키는 것에도 힘쓰셨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오해하기를 부모님이 모두 교사면 집에서 아이들을 굉장히 닦달하고 보챌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저희 집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단 한 번도 저희에게 큰소리를 내신 적이 없으시고 매를 드신 적도 없습니다. 그저 넘치는 사랑으로 저희를 품어 주셨습니다. 제가 부모님의 말을 거역하지 않고 들었던 이유는 단 하나입니다. 저를 그토록 사랑해주는 사람들을 실망시키고 싶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공부 하라고 하기 전에 먼저 공부했고, 나쁜 길로 가지 말라고 하시기 전에 밝은 길만 걸었습니다. 물론 잠시 방황할 때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길지 않게 스스로 방황을 마무리했고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곤 했습니다.
그러다가 처음으로 제 인생에서 소중한 사람을 떠나보내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10년 전, 할아버지가 임종하셨습니다. 91세의 고령이셨고 본래 몸이 편찮으셨기에 다들 어느 정도 마음속으로 준비를 하고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래도 막상 그 순간이 닥쳐오니 슬픔을 억누를 길이 없었습니다. 난생 처음으로 겪어보는 느낌이었고, 그 느낌은 저를 더 성장시켰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더 잘하자. 나중에가 아니라 지금 이 순간에 그들에게 더 잘하자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미래의 행복을 위해 현재의 행복을 버리지 말자고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단 한 번도 부모님 품을 떠난 적이 없다가 대학에 와서야 서울로 올라와서 자취를 하게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들이 주변에 없는 삶은 저를 나태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렇게 1학년을 허투루 보낸 후 군대를 갔다 오고 어느 순간 저는 이렇게 살면 안 되겠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리고 스스로 공부하기 시작했습니다. 누군가를 기쁘게 하기 위한 공부가 아닌 저 자신을 위한 일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홀로 서기에 서서히 적응해갔습니다.
이제는 어엿한 한명의 어른으로 자리 잡을 때가 되었습니다. 언제나처럼 마음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있을 것입니다. 그들이 보기에 떳떳한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최근 사회이슈 중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한가지를 선택하고 이에 관한 자신의 견해를 기술해 주시기 바랍니다.
(1000자 이내)
얼마 전 헝가리의 한 여기자가 아이를 안고 국경을 넘으려던 한 남성의 발을 걸어 넘어뜨린 사건이 있었습니다. 헝가리 인터넷 방송 N1 TV의 기자인 페트라 라슬로가 세르비아 접경 지역에서 시리아 내전을 피해 난민이 되어 국경을 건너던 한 남성을 발로 걸어 넘어뜨리고, 이 뿐만 아니라 다른 난민들에게도 발길질을 하는 장면이 독일 기자에게 포착 된 사건이었습니다. 이로부터 불과 며칠 전에 해변에서 시신으로 발견된 세 살배기 시리아 난민 아이를 촬영해 전 세계를 숙연하게 했던 터키 기자와 극명하게 비교가 되어 더욱 잔인하게 느껴진 사건이었습니다.
이 사건들의 근본적인 원인이 된 시리아 난민 사태는 시리아의 종교적인 문제 때문에 발생했습니다. 시리아의 4분의 1을 차지하는 시아파에서 대통령이 선출되어 나머지 4분의 3을 차지하는 수니파와 갈등을 빚게 되었고 이에 따른 내전으로 수백만 명에 이르는 난민들이 발생해 멀리 더 멀리 도망치고 있는 것입니다. 이미 레바논은 그들 인구의 4분의 1에 달할 정도로 많은 인원을 난민으로 받아들였을 만큼 시리아 주변국들은 난민 수용에 있어 포화상태에 이르렀고, 이에 더욱 더 멀리 유럽까지 난민들이 건너가고 있는 상황입니다. 하지만 많은 국가들이 난민들로 인해 발생할 2차적인 문제들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저는 기독교인들이 더욱 박해를 받았을 것이라며 기독교인만 수용하겠다는 프랑스 지방정부나 테러 등의 위협을 미리 계산하여 여자와 아이들만 난민으로 수용하겠다는 영국 정부 등의 발표 내용을 보고 두 눈을 의심했습니다. 만약에 그렇게 된다면 그들 역시 목숨을 걸고 피난행렬을 떠나고 있는 사람들의 발을 걸어 넘어뜨린 헝가리 여기자와 다를 바가 없는 셈입니다.
노블리스 오블리주라는 말이 있습니다. 저는 가진 사람들이 더욱 인류사회에 공헌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눈앞의 작은 계산에 빠져 보다 큰 인간적인 가치를 놓치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유럽 국가들은 더 넓은 마음으로 그들을 받아들여 수용해야만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