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국립대 / 국제학과 / 학점 3.97/4.5 / 토익: 875, 토익스피킹: 180/레벨 7, 오픽: , 기타: / 사회생활 경험: / MUN 2번, 영어말하기대회 수상 3번 이상 / 한국사검정시험: , 컴퓨터활용능력: ,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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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자기소개 및 성장과정에 대하여 기술해주시기 바랍니다. (1000자)
도전정신 하나는 그 누구에게도 지지 않는 아이. 사람들은 어릴 적부터 저에 대해 그렇게 말하곤 했습니다. 그 일례로 갑작스레 초등학생 때 아버지의 직장 때문에 미국에서 2년 동안 살아야 했던 상황이 온 적이 있습니다. 비록 적응력이 강한 성격이라 해도, 말도 통하지 않는 이역만리 타국으로 가 학교를 다녀야 했고, 출국 준비를 하던 중 여러 고난을 겪었기 때문에 어린 나이에 무척 도전적인 상황이였던 것은 분명합니다. 하지만, 특유의 긍정적인 성격으로 미국에서 한국으로 다시 되돌아오기 전 중학교에서는 미국 현지인 학생들도 받기 힘들다는 우등생 클럽(National Honor Society)를 당당히 부상 받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 당시만 하더라도 비록 동양의 잘 알려지지 않은 나라에서 왔고, 영어도 잘 하지 못했지만 도전정신과 기발함이 있었습니다. 때문에, 친구를 사귀는데에 있어서 제가 먼저 적극적이게 도전하면 될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때문에 저는 머리를 초록색으로 염색한 후, 학교 전반에 허락을 받은 후 "초록머리는 멋지다"라는 슬로건을 붙이고 다녔습니다. 자연스레 슬로건을 본 친구들이 "네가 걔 맞지?"라며 제게 말을 걸어왔고, 결국 교장선생님께서도 복도에서 저를 보시자 "모두가 너를 안다"며 동양에서 온 작은 소녀를 칭찬해 주시며 껄껄 웃으셨습니다. 그 후 친구를 많이 사귀게 된 저는 영어실력은 물론, 다양한 문화권의 아이들과 소통하며 견문을 넓혀, 결국 성적 마저도 좋은 결과를 내고 다시 2년 후 한국으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제가 생각하는 '혁신'입니다. 다른 공기업과 달리 코트라가 다른 점이 하나 있다면 그것은 글로벌적이며 혁신, 개방적인 가치를 더 추구해야 한다는 것이 될 것입니다. 저 역시도 처음 영어를 한 마디도 하지 못했지만, "미국에 왔으니 다양한 아이들과 이야기 하여 견문을 넓히고, 영어공부를 해야겠다"는 목표가 있었기에,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대응을 할 수 있었던 것인데, 이는 귀사의 핵심가치에 부합합니다.
2. 직무관련 교육, 경력 및 경험사항에 대해 상세히 기술해주시기 바랍니다. (1000자)
저는 인생에서 다양한 경험을 그 무엇보다 중시하는 사람이라, 대학교에 올라오고 나서는 다양한 대회활동, 봉사, 공모전, 직업 등을 경험 해 왔습니다. 물론 국제학을 전공하면, 상경 관련(엑셀 등) 수업 등을 원어로 듣지만, 저는 교외로 나가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또 경험을 하고 싶었습니다. 첫 번째는 봉사를 한 것 입니다. 저는 부산국제영화제, 아프리카 페스티벌, UN 서포터즈 등의 활동을 하며 영어 통역 봉사를 하여 가봉, 러시아, 영국 등의 여러 고객들을 의전하는 봉사를 했는데, 남을 돕는 것을 좋아하는 저라 보람을 느꼈습니다. 다만, 당시도 코트라에서 일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기 때문에, 단순 통역이 아닌 해외 기업과의 소통을 하고 싶은 열망이 있어 봉사가 아닌 실제 프리랜서로 벡스코, 호텔 등 기업 간 열리는 유치 행사 등의 리에종 역할을 하며 재학 중에 간간히 돈을 벌기 시작했는데 그 활동으로는 IMID 2018, 스타트업 페스티벌, 관광진흥기구 행사 등이 있습니다. 예컨대 2018 스타트업 페스티벌에서는 음악을 찾아주는 앱인 "샤잠"을 만든 미국인 사업가 옆에 동행하며 행사장등을 1:1 의전하는 역을 맡기도 했는데, 그 과정에서 앱이 탄생하게 된 경위, 회사 역사 등을 입으로 직접 전해 들으며 다음과 같은 생각을 했던 것이 기억 납니다: 역시 한국 회사와 외국을 이어주는 일은 중요하고, 내가 그 일을 하는 사람이였으면 좋겠다. 이와 같은 기술 교류를 통해 더욱 풍성해지고, 한국 기업도 널리 널리 진출하여 많이 발전해졌으면 좋겠다. 때문에 그 날 부터 저는 코트라에서 일하는 것을 매우 강하게 열망하게 되었습니다. 코로나 사태로 급히 휴학을 하고 생산적인 일을 찾던 중 울산에 위치한 한 어학원에서 약 10개월 정도 근무를 하게 되었는데, 그 곳에서도 특별 영어 토론, 스피치 반을 맡아 아이들에게 한국-세계 수출 관련 등 경제 관련 영자신문 읽기 등을 가르쳤는데, 이는 저의 귀사에 대한 강한 열정과, 또 열망을 그대로 반영합니다.
3. KOTRA 청년인턴에 지원한 동기 및 입사 후 계획에 대해 기술해주시기 바랍니다. (1000자)
저는 중학교 시절을 미국에서 보낸 경험이 있습니다. 낯선 미국 학교생활에서 영어 외에도 여러 과목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는데, 그 중 하나는 스페인어였습니다. 당시 같은 처지의 남미 출신 친구들을 사귀었던 터라 실용적이기도 했거니와, 영어와 어순과 발음이 비슷하면서도 새로운 언어를 배운다는 사실이 신기하게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전학생 한국아이가 스페인어를 구사한다는 소문이 교내 외국인 친구들에게 퍼졌고, 그 계기로 다양한 국적의 친구들을 사귀게 되었습니다. 그 후 외국어가 새로운 사람들을 더 쉽게 포용하게 해주는 매개체라는 점을 배웠고, 외국어 배우기는 저의 취미가 되었습니다. 때 마침 저는 미국역사, 정치 수업을 들으며 영어실력과 함께 세상에 대한 견문을 넓혀갔고, 이 세상에는 생각보다 더 다양한 나라, 그리고 일자리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 후, 저는 제 외국어 실력과 견문을 바탕으로 모국인 한국의 회사외 세계를 연결하는 다리가 되고 싶다는 막연한 소망을 품게 되었습니다. 때문에 한국에 와서도 틈틈이 국제 정세에 대해 배울 수 있는 기회를 물색하였고, 실제로도 국제학 전공자가 되었습니다. 이런 와중에 귀사의 K-MOVE 정책 등 국제학 전공자라면 자연스레 알 수 밖에 없는 굵직한 사업을 접하곤 나서는, 줄곧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에서 일하고 싶은 마음이 컸습니다. 또한, 글로벌 마인드를 바탕으로 수출과 해외일자리 발굴 등을 함양한다는 면에서 귀사의 핵심가치 및 인재상도 저와 꼭 들어맞았습니다. 저는 현재 울산에 거주하고 있기 때문에, 1지망~3지망 모두 울산 코트라지원단에 지원하게 되었습니다. 코로나 시대에도 울산과 세계를 연결하는 굳건한 다리가 되어오고 있는 울산지원단께서는 화상상담회를 진행하거나, 코로나 19 대응 지사화사업을 진행하는 등 유연하게 대처하는 반면, 울산대학교와 협력을 맺는 등 울산 도시 특성에 맞는 활동을 하고 있는데, 저 역시도 이런 혁신에 발맞춰, 열정을 가지고 사업 지원 및 조사 업무 보조 업무에 충실할 것을 약속드립니다.